'굿 라이어 (The Good Liar)'는 베테랑 배우 이안 맥켈런과 헬렌 미렌이 주연을 맡아, 두 노년의 만남과 속임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2019년 개봉한 이 영화는 니컬러스 사이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뷰티풀 마인드'를 연출한 빌 콘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로맨스로 시작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숨겨진 과거와 진실이 드러나면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며 관객을 긴장감 속에 몰아넣습니다. '노년의 로맨스'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인생의 황혼기에도 서로를 속이려는 게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기대 이상의 반전과 정교한 심리 묘사로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무엇보다 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이라는 연기 거장들의 대결 구도는 이 영화를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 깊이 있는 드라마로 완성시킵니다.
거짓의 시작, 진실의 반격, '굿 라이어'의 줄거리
영화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두 노년의 인물, 로이 코트니(이안 맥켈런)와 베티 맥리쉬(헬렌 미렌)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로이는 매너 있고 교양 있어 보이는 신사로, 베티 역시 남편을 잃고 외롭게 지내던 중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겉보기엔 둘 다 평범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로이는 오랜 시간 정체를 숨긴 채 살아온 전문적인 사기꾼이며, 베티는 그의 다음 타깃이 됩니다. 로이는 자신이 가진 부와 영향력을 믿고, 베티에게 접근해 그녀의 자산을 가로채려는 계획을 세우고 그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서서히 포섭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관객은 이 둘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베티의 손자 스티븐은 로이를 불신하며 끊임없이 견제하고, 로이 또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할 상대를 마주하고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됩니다. 특히 베티의 과거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오히려 로이의 계획이 그녀에게서 역으로 위협받는 상황으로 전환됩니다.
영화의 중반부, 로이는 자신이 베티의 모든 자산을 함께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을 이끌어내고, 돈을 이체하려는 순간 진짜 반전이 시작됩니다. 사실 베티는 처음부터 로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가족이 함께 계획한 복수극이 이제 막 실행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베티는 2차 대전 당시 로이의 악행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던 피해자의 여동생이었고, 이번 만남은 우연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복수의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결국 베티는 로이의 정체와 과거 범죄를 폭로하고, 그의 범죄 수익과 신원을 모두 박탈시키며 완벽하게 복수에 성공합니다.
진심인가 연기인가, 경계에서 만난 두 사람
로이 코트니(이안 맥켈런)는 부드러운 말투와 신사적인 외모 뒤에 강력한 조작과 기만의 기술을 숨기고 있는 노년의 사기꾼입니다. 수십 년간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온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은 없다고 믿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다른 상대를 만나게 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안 맥켈런은 지적인 품위와 동시에 섬뜩한 냉혹함을 절묘하게 오가며 인물의 다층적 매력을 표현합니다.
베티 맥리쉬(헬렌 미렌)는 평범한 미망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모를 과거와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는 인물입니다. 로이의 접근에 점차 마음을 여는 듯 보이지만, 점점 그녀의 표정 속에 감춰진 섬세한 계산과 분노, 슬픔이 드러나며 반전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헬렌 미렌은 특유의 절제된 연기와 강단 있는 눈빛으로, 무너진 삶을 회복하려는 여성의 고요하지만 단단한 복수를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스티븐(러셀 토비)은 베티의 손자이자 로이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젊은 인물로, 두 주인공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조연으로 활약합니다. 그 외에도 로이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들이 부분적으로 등장해, 퍼즐처럼 얽힌 진실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이야기를 밀도 있게 완성시킵니다.
시니어 스릴러의 묵직한 반전, 배우의 힘으로 완성된 긴장
'굿 라이어'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보다 이안 맥켈런과 헬렌 미렌이라는 두 연기 거장의 맞대결입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대사 이상의 숨결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을 말과 표정, 침묵으로 풀어냅니다. 그들의 연기는 줄거리 이상의 서사를 만들어내며, 관객의 몰입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로맨스 스릴러’라는 장르를 세련되게 비틀고 있습니다. 보통 로맨스가 깊어질수록 진심도 깊어지기 마련이지만, '굿 라이어'는 신뢰가 무너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을 끝까지 긴장시키는 재미를 제공합니다. 초반엔 다소 느슨해 보이는 흐름이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매 장면이 숨겨진 떡밥을 하나씩 회수해 나가며 지적이고 촘촘한 플롯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또한,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의미 깊습니다. 겉모습이나 나이, 경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 그리고 과거의 죄는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묵직한 주제가 시종일관 흐르며, 단순한 사기극 이상의 감정적 여운을 남깁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더 이상 위험하지 않거나, 단순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니어 캐릭터들의 깊이는, 젊은이 중심의 장르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색다른 매력입니다.
'굿 라이어'는 한 편의 클래식한 체스를 보는 듯한 영화입니다. 매 수마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바뀌고,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고요하지만 치열한 두뇌싸움은, 단순한 액션보다 훨씬 더 강한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 사기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뒤바뀐 위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정의가 맞물린 완성도 높은 심리극입니다.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은 없지만, 그 이상의 무게감과 여운을 가진 작품으로,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굿 라이어'는 진정한 ‘시니어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