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판타지 영화 '선과 악의 학교 (The School for Good and Evil)'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소만 체이너니(Soman Chainani)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각본과 연출은 폴 페이그(Paul Feig) 감독이 맡았으며, 여주인공 소피 역에 소피 앤 카루소, 아가사 역에 소피아 와일리, 그리고 교장 역에 샤를리즈 테론과 케리 워싱턴 등 화려한 배우진이 출연해 동화 속 세상과 현실 사이의 감성적 모험을 그려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선과 악의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각자의 선택이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판타지 구도 안에서 ‘진짜 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인가’라는 주제를 담고 있어,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요소까지 겸비한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선택받은 두 친구, 동화 속 운명을 다시 쓰다
외딴 마을 가브론에 사는 소피와 아가사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소피는 아름답고 공주를 꿈꾸는 소녀로, 자신의 운명이 언젠가는 더 크고 환상적인 세계에서 펼쳐질 것이라 믿는 낭만주의자입니다. 반면 아가사는 검은 옷을 즐겨 입고, 현실적이며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외톨이로 살아갑니다. 둘은 마을에서 ‘기이한 소녀들’이라 불리며 손가락질을 받지만,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친구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하늘에서 검은 괴조가 날아들고 두 사람은 강제로 낯선 세계로 끌려갑니다. 이들이 떨어진 곳은 바로 전설 속 ‘선과 악의 학교(The School for Good and Evil)’였으며, 이곳에서는 모든 동화 속 주인공과 악당들의 운명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비밀스러운 학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피는 ‘악의 학교’에, 아가사는 ‘선의 학교’에 배정되며 혼란은 시작됩니다.
소피는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확신하며 선의 학교로 가기를 원했고, 아가사는 친구를 되찾기 위해 학교 시스템에 맞서 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마법의 퀘스트’를 통해 누가 진정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판단하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피는 자신이 ‘악’의 소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 애쓰지만, 점점 내면의 욕망과 질투, 인정 욕구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반면 아가사는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외부의 평가와 달리, 진정으로 친구를 위하고 타인을 돕는 모습으로 ‘선’의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소피는 선의 학교에 있는 인기 있는 왕자 테드로스(제이미 플래터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며,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이 선과 악의 경계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결국, 소피는 스스로의 ‘악’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며 엄청난 어둠의 힘을 얻게 되고, 선과 악의 학교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합니다. 아가사는 친구를 구하고자 하며, 둘은 진정한 우정의 의미와 자신들의 운명을 다시 쓰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 선택의 끝에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외부의 판별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용기라는 메시지가 남습니다.
선과 악 사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인물들
소피(소피 앤 카루소)는 예쁘고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는 소녀로, 처음에는 선의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악의 학교에 배정된 후 점점 자신의 내면에 있던 분노, 질투,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과 마주하게 되며 ‘악’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입체적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선을 꿈꿨지만 결과적으로 악에 더 가까웠다는 설정은 이 작품의 반전이자 핵심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아가사(소피아 와일리)는 검은 옷과 어두운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악녀’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진심으로 친구를 위하는 다정한 인물입니다. 처음엔 친구를 구하려는 의무감에서 선의 학교에 머물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정한 ‘선’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테드로스(제이미 플래터스)는 아서 왕의 후손으로 선의 학교 최고의 인기인입니다. 겉보기엔 전형적인 ‘왕자’ 캐릭터 같지만, 실제로는 정의감보다는 사람들의 인정과 자신감 결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레이디 레소(샤를리즈 테론)는 악의 학교의 교장이며, 냉정하고 권위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소피의 내면 속 악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며 조력과 동시에 견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복합적인 가치관을 지닌 교사로서의 역할이 인상 깊습니다.
프로페서 도비(케리 워싱턴)는 선의 학교의 교장으로, 정석적인 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고정관념의 화신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권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비판적인 교육 시스템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선함’이란 무엇인가, 판타지를 통해 그리는 자기 이해의 여정
'선과 악의 학교'는 마법이나 전투, 로맨스 등 판타지 장르의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선과 악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에 있습니다. 특히 소피와 아가사의 배치가 서로 기대와 정반대라는 점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진짜 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며, 이 질문은 영화 내내 줄곧 이어지는 핵심적인 고민이 됩니다.
또한 화려한 시각효과와 독특한 학교 디자인,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의상과 마법 장면들은 디즈니식 전통 동화를 탈피한 새로운 스타일의 판타지 비주얼을 선사합니다. 마법학교라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 정체성 혼란, 우정의 위기, 자아의 성장 같은 테마는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의미 있는 여운을 남깁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케리 워싱턴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교장으로 등장해 중심을 잡고, 차세대 배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선과 악의 학교'는 겉으로는 마법 학교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정과 자아, 정체성과 선택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담은 성장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이 선과 악으로 나뉘었지만,, 결국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스스로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은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선하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악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은 삶의 경험, 선택, 감정,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뒤섞이는 개념임을 영화는 말해줍니다. 진정한 선이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10대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모든 세대를 위한 철학적 판타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