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영화 '뉴 뮤턴트(The New Mutants)'는 마블 코믹스에서 파생된 엑스맨 유니버스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다르게 공포, 심리 스릴러, 청춘 성장물의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감독 조시 분(Josh Boone)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신세대 돌연변이’들에 주목하여, 성장기의 혼란과 트라우마, 그리고 통제와 자유라는 주제를 심리적 공포를 통해 표현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기존의 엑스맨 영화들이 화려한 액션과 초능력 전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더욱 밀도 높은 인물 중심의 이야기와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정서적 충돌에 초점을 맞추며 보다 차분하고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내가 괴물이 아니길 바랐지만, 영화 '뉴 뮤턴트'의 줄거리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소녀 ‘대니 문스타(Dani Moonstar)’가 자신이 살던 마을이 정체불명의 재앙에 의해 전멸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녀는 알 수 없는 병원 시설에 감금되어 있고, 곧 이곳이 ‘돌연변이’들을 격리하고 연구하는 비밀 연구소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니는 자신 외에도 다섯 명의 또래 소년소녀들 레이인, 일리아나, 샘, 로베르토와 함께 ‘프로그램’이라는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게 되지만, 이 시설이 단순한 병원이 아닌 능력을 통제하려는 실험장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점차 인식하게 됩니다. 이곳의 담당자인 닥터 세실리아 레예스는 이들을 ‘치유’하려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무기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각자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시설 안에서 각자의 두려움과 과거의 기억이 환영처럼 실체화되며 점점 정신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대니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다른 이들의 트라우마를 실현시키는 능력, 즉 타인의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이 이 시설과 동료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에 대해 심각한 자책과 혼란을 겪습니다.
결국 이들이 마주한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죄책감, 억눌린 감정들이 실체화된 존재들이었으며, 마지막에는 대니의 감정이 만들어낸 거대한 악몽의 화신 ‘데몬 베어’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진정한 각성과 자립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병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해방이 아닌, 자신을 괴롭히던 내면의 괴물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정서적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트라우마와 저항 사이,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
대니 문스타(블루 헌트)는 주인공이자 내면의 공포를 실체화하는 능력을 지닌 신참 돌연변이입니다. 그녀는 극심한 트라우마와 상실감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공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그녀의 성장과 자각, 그리고 두려움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일리아나 라스푸틴(안야 테일러 조이)은 현실을 왜곡하고 ‘림보’라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진 소녀입니다. 거칠고 냉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학대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냉담함과 공격성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외유내강형 캐릭터로, 결국에는 대니를 이해하고 돕는 중심인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레이인 싱클레어(메이지 윌리엄스)는 늑대처럼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한 종교적 신념과 자신의 돌연변이성에 대한 혐오로 인해 심각한 자아분열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대니와의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샘 거스리(찰리 히튼)는 자신의 몸을 초고속으로 폭발하듯 날아가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청년입니다. 광산에서 아버지를 사고로 죽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힘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로베르토 다 코스타(헨리 자가)는 태양 에너지와 불을 이용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사랑했던 사람을 자신이 죽였다는 기억에 갇혀 스스로를 억제하며 외면 속에 머무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해야만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히어로 장르와 심리 스릴러의 융합, 억압된 자아의 탈출기
'뉴 뮤턴트'는 기존의 히어로물 공식을 벗어나, 캐릭터 중심의 심리극을 전면에 배치하며 공포 장르의 긴장감과 성장 드라마의 감정선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입니다.
첫째,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연극적인 미장센을 가진 감정극처럼 전개되며, 관객은 인물 각각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어 더 깊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 ‘능력’은 축복이 아닌 ‘저주’로 묘사되며, 캐릭터들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억누르고자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적 서사’ 대신, 심리치료와 자기 수용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부여합니다.
셋째, 트라우마가 실제 괴물로 등장하는 공포적 연출은 단지 시각적 자극에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도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감정적 체험을 유도하며, 캐릭터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도록 합니다.
넷째,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성과 다문화 수용의 메시지를 담았으며, 특히 대니와 레이인의 관계에서는 성소수자 서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틀에 박히지 않은 성장담으로 차별화됩니다.
'뉴 뮤턴트'는 화려한 액션이나 세계관의 확장보다는, 인물 개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와 공포를 조명하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여정은 단지 초능력의 통제에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서 살아남고 싶은 절박한 감정, 공포를 넘어서는 용기,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장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뉴 뮤턴트'는 전통적인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본질은 가장 인간적인 정서인 ‘두려움’과 ‘수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영웅이 되기 위한 전투보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성숙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