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엘라(Cruella, 2021)'는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1961)'의 대표 악역인 크루엘라 드 빌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실사 영화로, 악당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리는 빌런 오리진 무비입니다. '아이, 토냐'를 연출한 크레이그 질레스피(Craig Gillespie)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아카데미 수상 배우 엠마 스톤(Emma Stone)이 크루엘라 역을 맡아 놀라운 캐릭터 몰입을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악역의 흑백 논리를 넘어서, 한 여성이 어떻게 세상의 부조리와 차별을 뚫고 자신만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만들어가는지를 화려하고 과감하게 그려냅니다. 1970년대 런던 펑크 록 시대의 패션과 음악, 아트 씬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와 시각적 스타일은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크루엘라는 과연 진짜 악당이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서 출발해 관객의 통념을 뒤흔드는 인물 중심의 드라마로 완성됩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묻는 한 소녀의 성장기, '크루엘라'의 줄거리
주인공 에스텔라는 타고난 창의성과 반항적인 성향을 지닌 소녀입니다. 어릴 적부터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감각을 지닌 그녀는 엄마의 바람과 달리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크루엘라(Cruella)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한 파티에서 의문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면서 에스텔라는 완전히 고아가 되고 런던의 거리로 내몰립니다. 그곳에서 재스퍼와 호레이스라는 두 거리 소매치기 소년을 만나 함께 생존을 위한 동료가 됩니다. 이들은 도둑질을 하며 지내면서도 서로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고, 에스텔라는 점차 범죄와 예술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에스텔라는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바로니스가 운영하는 고급 백화점에 일하게 되며 그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니스는 독단적이고 냉혹한 인물로, 에스텔라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이용하려 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어머니의 죽음과 바로니스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진실이 밝혀지면서 에스텔라는 점차 ‘크루엘라’라는 또 다른 자아를 전면화하게 됩니다.
그녀는 패션을 무기로 삼아 바로니스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고, 런던 전역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과감한 패션 퍼포먼스를 통해 점차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한편,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라는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점차 ‘나는 본래 크루엘라였으며, 그 자아가 진짜 나다’라고 선언하며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후 크루엘라는 바로니스에게 치밀하게 복수하고, 결국 그녀의 유산과 지위를 넘겨받으며 런던 패션계의 새로운 중심인물로 떠오릅니다. 영화는 크루엘라가 저택을 얻고, '헬 홀'이라 불리는 공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는 장면에서 마무리되며, 기존 '101마리 달마시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설정을 암시합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좇는 등장인물들
에스텔라 / 크루엘라 (엠마 스톤)는 영화의 중심인물로, 이중적인 자아를 지닌 여성입니다. 에스텔라는 선하고 성실한 모습을 지닌 반면, 크루엘라는 날카롭고 도발적인 성격을 가진 또 다른 자아입니다. 그녀는 억압과 차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크루엘라’를 만들어내고, 결국 그 자아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합니다.
바로니스 본 헬만 (엠마 톰슨)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패션 디자이너이자 에스텔라의 롤모델이자 숙적입니다. 냉혹하고 이기적인 성격이며,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강한 집착을 가진 인물로, 크루엘라와의 대립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권력과 창의성의 충돌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시대적 한계 속 권력을 쥔 여성의 복합적인 초상을 담고 있습니다.
재스퍼 (조엘 프라이)는 거리를 전전하던 시절부터 에스텔라와 함께했던 소매치기 동료입니다. 현실적이고 온화한 성격으로, 크루엘라의 극단적인 행동을 걱정하면서도 늘 그녀를 돕습니다.
호레이스 (폴 월터 하우저)는 재스퍼와 함께 움직이는 또 다른 동료로, 우직하면서도 의외로 눈치가 빠른 인물입니다. 영화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크루엘라의 변화에 가장 현실적으로 반응합니다.
아르티 (존 맥크레)는 패션숍을 운영하며 크루엘라와 뜻을 함께하는 인물로, 그녀가 예술적 혁신을 현실화하는 데 큰 조력자가 됩니다. 크루엘라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추천 포인트: 감각적인 비주얼, 여성 캐릭터 중심의 탄탄한 드라마
'크루엘라'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패션 연출에 있습니다. 영화는 1970년대 런던 펑크 문화를 배경으로, 크루엘라의 파격적인 의상과 무대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단순한 의상을 넘어 하나의 ‘서사 도구’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크루엘라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펼쳐지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의상 디자인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그녀의 내면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됩니다.
또한, 이 영화는 두 여성 캐릭터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 구조를 통해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크루엘라와 바로니스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서, 창조성과 권력, 세대 차이와 자존심을 둘러싼 복합적인 감정선을 공유하며, 긴장감 넘치는 대립 관계를 형성합니다. 두 인물의 관계는 마치 예술과 억압, 천재성과 통제력 사이의 싸움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배우들의 열연도 추천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특히 엠마 스톤은 선하고 섬세한 ‘에스텔라’와 도발적이고 강렬한 ‘크루엘라’라는 이중적인 자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엠마 톰슨은 차가운 카리스마와 절대적 통제를 갖춘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해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음악과 편집의 조화도 뛰어납니다. 롤링 스톤스, 퀸, 블론디 등 시대를 대표하는 록 음악들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각 장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립니다. 이처럼 영상과 사운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크루엘라의 세계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결과적으로 '크루엘라'는 스타일과 메시지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기존의 디즈니 빌런을 단순한 악역이 아닌 한 인물의 성장과 정체성 찾기의 이야기로 재해석한 점에서 신선하고 독보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크루엘라'는 단순히 한 악당의 과거를 설명하려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나답게 살기 위해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 여성’의 이야기이며, 기존의 틀과 기대에 맞추기를 거부한 한 개인의 선언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그 이면엔 어떤 사연과 감정이 존재하는가? 크루엘라는 '악녀'가 아닌,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여성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엠마 스톤의 새로운 대표작이자, 디즈니 실사 영화 중 가장 독특하고 세련된 작품인 '크루엘라'는 시대정신과 미학, 정체성의 문제를 모두 녹여낸 뛰어난 엔터테인먼트이자, 강렬하고 아름다운 복수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