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한 '알리타: 배틀 엔젤(Alita: Battle Angel)'은 일본 만화 <총몽(銃夢, Battle Angel Alita)>을 원작으로 한 SF 액션 영화로,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과 제작을 맡고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감독을 맡아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디지털과 실사의 경계를 허무는 비주얼, 사이버펑크 세계관의 정교한 구현, 그리고 인간성과 기계성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는 인물의 서사가 결합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도 '알리타'는 기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배우 로사 살라자르의 연기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CG가 결합된 캐릭터 ‘알리타’는, 인간과 기계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SF영화 속 여성 영웅의 새로운 계보를 열었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액션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정체성 서사'를 중심에 둔 감성적인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기억을 잃은 소녀, 폐허 속에서 다시 태어나다
영화는 미래의 지구,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도시 ‘스크랩 아이언 시티’. 하늘 위에는 선택받은 이들만 거주하는 유토피아 ‘잘렘’이 있고, 아래 도시는 잘렘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와 고철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하층민들의 공간입니다. 어느 날, 스크랩을 뒤지던 사이보그 의사 다이슨 이도(크리스토프 왈츠)는 잘렘에서 떨어진 폐기물 속에서 상반신만 남은 한 소녀 사이보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의 두뇌는 완전히 살아 있으며, 이를 본 이도는 그녀를 정성스럽게 복원해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알리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깨어납니다. 처음 보는 세상, 낯선 사람들, 낯선 감정 속에서도 그녀는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모습으로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휴고(키언 존슨)라는 소년과 친구가 되며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쉬운 곳이 아닙니다. 도시엔 폭력이 난무하고, 잘렘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으며, 사이보그 사냥꾼 ‘헌터 워리어’가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또 다른 위협이 됩니다. 알리타는 우연히 자신이 뛰어난 전투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도는 그녀가 과거에 전설적인 전사로서 특수한 군사 프로그램 ‘우르므의 병기’였다는 사실을 밝히게 됩니다.
한편, 잘렘을 지배하는 의문의 존재 노바는 알리타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녀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밉니다. 그 일환으로 그는 베타급 악당 벡터(마허샬라 알리)를 조종해 사이보그 용병들을 보내 알리타를 공격하게 하고, 알리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헌터 워리어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전투에 나서게 됩니다.
점차 기억의 조각을 되찾는 알리타는 과거의 파편 속에서 자신이 단순한 사이보그가 아니라, 잘렘과 지하 전쟁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휴고는 잘렘에 오르기 위해 불법적으로 사이보그 부품을 수거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알리타는 그를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서지만, 잘렘의 냉혹한 현실은 결국 그들의 미래를 가로막습니다.
휴고는 끝내 잘렘으로 올라가려다 떨어져 죽고, 알리타는 눈물 속에서 복수심에 불타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모터볼 경기장 위에 올라 칼을 들고 하늘 위 잘렘을 응시하며, 노바에게 직접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리타'는 다시 시작될 전쟁과 그녀의 정체성을 향한 싸움의 서막을 알리며 끝이 납니다.
인간성과 기계성 사이에서 움직이는 강렬한 캐릭터들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는 감정을 지닌 전사입니다. 처음엔 순수하고 해맑은 소녀로 등장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내면의 전투 본능이 깨어나면서 사랑과 정의, 그리고 복수라는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인물로 성장합니다. 퍼포먼스 캡처로 구현된 그녀의 표정은 CG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감정선을 보여주며, SF 캐릭터의 한계를 넘어서는 입체적인 매력을 선사합니다.
다이슨 이도(크리스토프 왈츠)는 알리타를 만든 아버지 같은 존재로, 따뜻하고 헌신적인 인물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알리타를 통해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고자 하며, 그녀를 보호하려는 인간적인 사랑과 과학자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을 보여줍니다.
휴고(키언 존슨)는 잘렘에 대한 환상을 가진 거리의 소년으로, 알리타와의 사랑을 통해 변화해 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순수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 앞에서 타협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 도시가 얼마나 잔인한지, 그 속에서 꿈꾸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벡터(마허샬라 알리)는 잘렘과 지상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관리자이자 이면 세계의 통치자 역할을 하는 인물로, 탐욕과 권력의 화신입니다. 그의 뒤에는 노바라는 더 거대한 존재가 있으며, 그는 타인을 조종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 세계의 계급 질서를 상징합니다.
SF, 감성, 액션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정수
'알리타: 배틀 엔젤'은 한 편의 비주얼 쇼크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설계한 세계관은 미래적이면서도 낯설지 않고,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날카로운 연출은 감성적인 이야기와 폭발적인 액션을 효과적으로 조화시킵니다. 특히 모터볼 경기 장면은 전형적인 SF 액션을 넘어선 연출의 극치를 보여주며, 대형 스크린에서 경험했을 때 그 감동은 더욱 극대화됩니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한 영웅 서사나 복수극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 사랑, 희생, 자아에 대해 깊이 있게 질문합니다. 알리타는 로봇처럼 보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는 관객들에게 기계와 감정, 존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운을 남깁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로사 살라자르는 단순한 얼굴이 아닌 퍼포먼스 전체로 캐릭터를 구축했으며, 크리스토프 왈츠는 조용하지만 강인한 부성애를 진정성 있게 표현합니다. 마허샬라 알리의 이중적인 연기도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며, 영화 전체에 무게 중심을 잡아줍니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거대한 도시와 계급의 상징인 ‘잘렘’에 맞서 한 소녀가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진실과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기억을 잃었지만 감정을 되찾고, 연인을 잃었지만 사랑을 배웠으며, 과거를 잃었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닌 성장과 자각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기술적으로도 인상 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알리타가 보여주는 단단한 의지와 따뜻한 감정, 그리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여성상입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싸우는 존재로 거듭나며, 현대 영화 속 여성 히어로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알리타'는 액션과 감성, 기술과 서사의 균형을 잡은 보기 드문 SF 영화입니다.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과 캐릭터의 성장 서사가 인상 깊은 이 작품은, 단지 눈으로 즐기는 영화를 넘어 감정과 의미로 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