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한국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노년의 두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보기 드문 범죄 추적 스릴러입니다. 제목처럼 ‘반드시’라는 집요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묵직한 메시지와 서민적인 정서를 녹여낸 이 영화는 잔혹한 범죄에 맞서는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듯한 리얼한 전개와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 그리고 무엇보다 노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백윤식과 성동일이 펼치는 ‘노년 형사 콤비’의 진득한 케미는 영화의 핵심 재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죽음을 둘러싼 진실, 이웃은 왜 죽었는가
서울 외곽의 작은 단독주택 밀집지역,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서 이웃 주민이 의문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이 집 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려 하지만 이웃 주민 심덕수(백윤식)는 석연치 않음을 느낍니다. 그는 전직 경찰로, 은퇴 후 조용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지만 이 사건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덕수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외지인 출신의 부동산 업자와 수상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문을 품고 이 사건이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주민인 박평달(성동일)을 설득해 다시 한번 과거의 감을 되살리며 수사 아닌 수사에 착수합니다. 평달은 과거 경찰 조직에 몸담았지만, 지금은 동네 파출소에서 민원처리에 주로 응대하는 나태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귀찮아하던 평달 역시 점차 이웃 여성의 죽음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추적에 나서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밝혀지는 진실은 더 충격적입니다. 이웃 주민의 죽음은 동네에 침투한 부동산 투기 세력과 연관된 악질 범죄의 일부였고, 덕수와 평달은 더 이상 수사를 뒷짐 지고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신들이 직접 정의를 실현하려 합니다. 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두 인물의 인간적인 사연과 유머를 절묘하게 섞어가며 마지막까지 몰입도를 유지합니다. 이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묻혔을 사건은 결국 ‘집념’이라는 이름 아래 드러나게 되며, 영화는 이름 없는 이웃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진한 울림을 남깁니다.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조합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 심덕수(백윤식)는 전직 강력계 형사로, 강단 있고 고집스러운 성격의 인물입니다. 그는 은퇴 후 평범한 이웃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웃의 의문사 사건을 목격한 뒤 과거 형사로서의 본능이 깨어나게 됩니다. 덕수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뚝심을 지닌 인물로,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혼자 의심을 놓지 않으며 추적을 멈추지 않습니다. 백윤식 배우 특유의 묵직한 카리스마와 눈빛 연기는 이 캐릭터에 생동감을 더해주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에 동화되도록 만듭니다.
그의 파트너인 박평달(성동일)은 다소 귀차니즘에 빠진 경찰로, 형식적으로만 일을 처리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덕수의 설득과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후부터는 경찰 본연의 사명감을 되찾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성동일은 특유의 입담과 생활 연기를 통해 이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웃음과 진지함을 모두 소화합니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노년 콤비의 호흡은 자연스럽고 리듬감 있으며, 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 외에도 동네를 장악하려는 부동산 세력, 경찰 조직 내부의 복잡한 구조, 그리고 조용히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사건에 영향을 미치며 극의 리얼리티를 높여줍니다. 각 인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실제 우리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인물로 묘사되어 관객에게 큰 공감을 선사합니다.
재개발·범죄·정의의 현실, 반드시, 잡는다로 본 한국 사회
첫 번째로, 기존 범죄 스릴러와는 다른 시선을 갖춘 작품입니다. ‘반드시 잡는다’는 화려한 액션이나 첨단 장비 대신, 인간의 집념과 직관, 경험을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는 무기력하게 보일 수 있는 노년층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메시지입니다. 영화는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 지역 사회의 침식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냅니다. 이웃을 위한 정의, 그리고 잊힌 죽음을 밝히려는 의지는 관객 스스로에게도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세 번째는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력입니다. 백윤식과 성동일은 오랜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그 인물이 되어 영화에 녹아듭니다. 관객은 두 사람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단순한 추격극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여운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잡는다'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 이웃의 죽음을 ‘그저 그런 일’로 넘기지 않으려는 두 노년 남성의 고집과 의지가 빚어낸 조용한 분노의 드라마입니다. 삶의 끝자락에 접어든 이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행동은 오히려 젊은 세대보다 더 뜨겁고 순수하며,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늙었지만 결코 무기력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만든 경험과 냉철함으로 무장한 주인공들의 행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히는 ‘공공의 책임’이라는 가치를 되새기게 만듭니다. 마을이 침묵해도,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누군가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이 영화의 의지는 강력하고 분명합니다.
따뜻한 인간미와 묵직한 사회 비판, 그리고 노련한 연기와 연출이 어우러진 '반드시 잡는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수작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정의는 살아 있어야 하며, 때로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이웃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